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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한국 부동산업계에서 ‘양포세’, 곧 ‘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라는 말이 나온 건 2020년대 초반이었다. 그즈음 한국 정부는 부동산 규제를 강화하면서 세법을 수시로 개정했다. 복잡해진 규정에 더 복잡한 예외 조항이 잡다하게 붙으면서 관련 세법을 전문가들도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세무사들이 홈페이지에 ‘양도소득세 상담은 받지 않는다’는 사금융대환대출이란 문구를 적었고, 국세청 실무자들은 양도세 관련 질의에 답변을 피했다.
얼마 뒤 인공지능(AI) 붐이 일면서 국세청은 AI 상담사를 도입했고, 몇몇 은행과 부동산 컨설팅 업체는 세액을 계산하고 절세 방법을 조언하는 AI 서비스를 내놨다. 처음에는 안내문을 낭독하는 수준이라는 불평도 있었지만 AI의 성능이 발전하며 점차 쓸만해졌다. 그러는 사 소상공인지원대책 이 서울 부동산 가격은 몇 번 더 폭등했고, 그때마다 부동산 규제와 세법은 더 난해해졌다.
‘작은 정부, 빠른 정부, AI 정부’를 표방한 정권이 들어섰고, 새 대통령은 각종 행정 서비스를 AI와 로봇 기반으로 다시 디자인하라고 지시했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행정 업무는 AI에 맡기고 인간 공무원은 보다 중요한 기획과 안전, 대민 부문을 대학학자금대출신청 신경 써야 한다는 취지였다.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경찰청은 교통사고 범칙금 발부와 처리에, 보건복지부는 사회보장급여 자격 심사에, 국토교통부는 건축 허가 서류 검토에 AI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세청은 AI 기반 세금 계산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보고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체계를 개편할 때 LG CNS가 시스템을 개발했듯, 한국의 대기업 신용카드 소득증빙 네카팡이 세금 계산 시스템 개발을 맡았다. 국세청과 네카팡의 목표는 야심 찼다. 부동산세는 앞으로도 수없이, 수시로 개정될 거다, 법률이 공포되면 바뀐 내용을 알아서 파악한 뒤 스스로 업데이트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게 개발팀의 문제의식이었다.
쉽지 않은 과제였지만 개발팀은 완수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AI 코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남은할부금확인 시스템이 정확히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근 20년 동안의 과세 자료를 전부 입력했더니 몇 시간도 되지 않아 24종류 세금 20년 치 계산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부과된 액수와 비교해보니 몇 건 차이가 있었는데, 검토 결과 과거 국세청이 잘못 부과한 것이었다.
시스템이 전격적으로 도입된 뒤 한동안은 AI와 국세청의 인간 직원이 같은 업무를 중복으로 수행했다. AI는 오류가 없는 듯했고, 점차 인간 직원의 역할도 AI를 감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말이 감독이지, 이의 신청이 들어오면 AI에 왜 그렇게 과세했는지 물어보고 답변을 민원인에게 전달해주는 게 주 업무였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겼는데, AI가 아니라 사람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부동산세 부담을 쉽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되자 몇몇 정치인은 전보다 더 정확하게 ‘징벌적 과세’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여겼다. 행정부가 세법 시행령을 수시로 개정하고 각종 특례를 넣어서, 국회를 거치지 않고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지역을 겨냥한 표적 과세를 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부동산세는 이제 인간 세무사는 도저히 손댈 수 없는 혼돈 덩어리가 됐다.
몇 년 뒤, 네카팡 공공사업부 3팀.
“국세청에 보낼 보고서 수정안입니다, 팀장님.”
수석 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전자문서를 팀장은 손톱을 질근질근 씹으며 검토했다.
“조금 전 버전과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네.”
“AI가 대응 전략을 새로 짜는 게 낫겠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세금 계산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지 말고 그냥 음모론의 근거를 반박하는 전법을 쓰래요. 그게 여론에 더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어차피 국세청도 자기들이 국회에 보고해야 하니까 저희한테 연락을 한 거잖아요.”
로또에 대해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지 분류기에 대해서도 꾸준히 조작설이 돌았다. 세금 계산 시스템에 오류가 있다는 음모론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 음모론은 어느 대학의 수학과 교수가 제기했고, 신봉자가 꽤 많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국세청에 그 음모론이 맞는지를 물었고, 국세청은 시스템을 운영하는 네카팡에게 답변서를 요구했다.
“난 그 교수가 하는 말이 뭔지 이해를 못하겠던데. 무슨 메타분석 기법을 썼다면서.”
팀장이 말했다.
“저도 그 교수 말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음모론 신봉자들도 그 메타분석 기법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냥 자신들이 내야 할 만큼 세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니까 그런 음모론에 빠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수석연구원의 말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사람들이 정말 내야 할 만큼 세금을 내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세금 계산 시스템은 이제 블랙박스였다.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운영자인 그들도 몰랐다. 이해할 능력도, 설명할 능력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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